지성을 갖춘 승부사 거스 히딩크!

▶승부사 히딩크
나는 어려서 지는 걸 무척이나 싫어 했다. 경기에서 지면 울었다. 우리집안에서 나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은 없었다. 큰형이 공부에서 지는 걸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나처럼 울지는 않았다. 나는 좀 달랐다. 축구 게임에서 지고 나면 세상이 끝나는 것만 같았다. 프로축구 감독이 되고 난 직후에는 경기에서 지만 이삼일씩 사라지는 버릇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를 두고 '잠수를 탄다'는 표현을 쓰던데, 내가 잠수함을 타는 버릇은 꽤 오래 된 셈이다. 어디든 혼자 쳐박혀서 울분을 삭혀야 직성이 풀렸다. 선수 시절에도 경기에서 지면 모든 책임이 내게 있는 것처럼 여겼다. 성격이 괴팍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세상에세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경기에서 지면 바로 포기하는 사람과 경기에세 진 것을 어떻게든 만회하려는 사람이다. 난 후자쪽이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다. 그게 내 성격이다.
열두 살때 대회에 나가 진 적이 있었다. 치미는 화를 누를 수가 없었다. 마치 나 때문에 진 것만 같아 눈물이 펑펑 쏟아 졌다. 그리고 난 뒤 이를 악물고 더 연습했다. 친구들을 탓하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졌다는 사실이 싫었을 뿐이다. 20대 초반에 프로구단 코칭스태프로 일했을 때도 경기에서 지고 나면 이삼 일씩 사라지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주 나쁜 버릇이다. 그런 행동은 주변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 패배를 극복할 줄 알아야 하지만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다. 아마도 스물 다섯살때 까지 그랬던것 같다. .

▶독서가 히딩크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의 역사책을 통해 한국과 한국인을 배웠음이 일본에도 알려졌다.일본 닛칸스포츠가 6월 26일 2면 상자기사로 히딩크의 성공비결로 꼽았다. 표류기를 쓴 하멜 이후 가장 한국인에게 가까워진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한 가지 비결을 소개했다.
한국인의 속성과 심리를 누구보다 잘 꿰뚫고 풍부한 이해의 바탕에서 개혁을 추진한 히딩크의 도전에 대해서였다.
무조건 자기의 생각대로 밀고 나갔기 때문에 많은 반발을 자초했던 일본의 필립 트루시에와 다른 점이었다.
히딩크는 한국과 한국인을 알기 위해 책부터 들었단다.그가 지난해 1월 한국 대표팀 감독에 취임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한국인을 연구한 것이다. 입국한지 이틀 만에 스태프에게 요청한 자료는 한국의 역사책이었다.
물론영어로 된 것이었다.히딩크는 이 책을 읽으며 한국의 역사를 배웠다. 36년간 침략을 했던 일본과 손을 잡고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게 된 한국인들의 대회를 향한 열정과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이유가 역사책에 녹아 있었다.남에게 절대로 해를 입히지 않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밟을수록 질겨지는잡초 같은 투혼도 배웠다. 속에는 열정이 가득 넘치지만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점도 파악했다.서열을 우선으로 치고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알았다. 히딩크는 역사책을 통해 한국을 파악한 뒤 개혁을 시작했다.두번째로 그가 열심히 읽은 책은 바로 삼국지란다.수많은 영웅호걸이 전쟁을 치르는 얘기속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배운 히딩크였다.따지고 보면 월드컵도 그라운드라는 중원을 놓고 수많은 장수(감독)들이 병사(선수)를 데리고 치르는 전쟁이다.귀중한 목숨이 오고가지만 않을 뿐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월드컵은그 나라의 모든 힘과 국민의 열정이 투입되는 치열한 전쟁이었다. 한달간 원정을 떠날 때는 30권 이상의 책을 들고 간다는 히딩크가 이번 월드컵 동안 느낀 가장 큰 불만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란다.

▶언어를 정복하다.
내가 축구 다음으로 관심을 가진것은 어학이였다. 음악도 좋았다.
그 결과 난 네덜란드어는 물론이고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까지 5개 국어를 구사한다.
이탈리아어도 대충 알아듣는 수준이다. 1992년 스페인 발렌시아와 감독 계약을 맺을 당시에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다.
첫 기자회견 때 통역을 대동한 뒤, 나는 네덜란드 북부 테스헬링섬에 들어가 5주 동안 스페인어만 공부 했다.
따로 선생을 두지 않고 테이프와 교재만 갖고 들어가 독학 했다.

5주일 뒤 부임해서 다시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는 통역없이 스페인어로 회견을 했다.
모두들 놀랐다. 이후 스페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한두 달 지나자 스페인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머리속에 어학 테이프를 심어놓은 것 같았다.
한국 축구 팬들 가운데엔 내가 스페인어를 독학으로 공부를 했으면서도 한국어를 익히지 않은 것을 두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었음을 알고 있다.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무엇보다 나는 스페인어가 세계언어라는 차원에서 공부했다고, 특히 축구계에서 스페이어가 지니는 영향역은 엄청나다.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는 세계 최고 리그다. 그뿐 아니라 쟁쟁한 남미 선수들이 대부분 스페인어를 쓴다.
사정이 이러한데 축구 감독인 내가 어떻게 스페인어를 익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감독으로서 한국어를 제대로 익히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선수들도 영어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였다.
내가 처음접한 한국은 매우 페쇄적인 사회였다. 월드컵 때까지 1년 6개월 동안 한국팀을 지도하면서 한국축구가 그 닫힌 문을 열어야만 국제무대에서 인정 받을 수 있음을 절감했다.
아무리 유능한 선수라해도 영어를 할 줄 알아야 국제무대에서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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